[플타의 책장] 단요 작가의 완벽한 논픽션,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김승요 승인 2023.11.21 16:53 의견 0

엉망진창인 세계를 수레바퀴가 구원할 수 있을까?

수레바퀴가 처음 등장하자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운명을 피할 방법은 없다.

수레바퀴의 요구사항을 충실히 따르며, 부디 청색 영역이 늘어나기를 기원할 뿐….

이제 사람들은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


제3회 박지리문학상 수상! 《다이브》, 《개의 설계사》 단요 작가의 또 하나의 문제작!

책 소개

사람들의 머리 위에 수레바퀴 모양의 원판이 떠 있다.

과학으로 검증할 수 없는 원판, 즉 ‘수레바퀴’는 인간의 정수리에서 50센티가량 떠올라 있으며, 정의를 상징하는 청색과 부덕을 상징하는 적색 영역으로 이분된다. 모두가 볼 수 있고, 삶의 행적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하고, 이는 천국과 지옥에 갈 확률을 나타낼 지도 모른다.

개개인의 청색 영역 비율은 어느 나라에서든 평균적으로 65퍼센트 전후고, 주변인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사람조차 70퍼센트를 넘기 어렵다. 두 영역의 비율은 삶의 행적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화한다. 범죄를 저지른 적 없는 사람들의 수레바퀴에도 적색 영역은 존재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수레바퀴 컨설팅회사 ‘디코럼’의 대표에 따르면 이러하다.

“타인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내게 충분한 것을 기꺼이 나누려는 태도 말이죠. 이게 보통 사람들의 평균치인 65퍼센트를 이룬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나머지 35퍼센트는 복잡하고 구체적인 요구 사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은 그중에서 비교적 쉬운 것들을 가지겠지만 정치인이나 기업가에게는 더욱 어렵고 많은 도전 과제가 주어집니다.”(55쪽)

이 회사는 각자의 직분과 영향력에 따른 목표, 즉 수레바퀴의 적정률을 찾아준다.(‘디코럼’은 등장인물의 행동이 상황과 신분에 어울리는 것을 일컫는 문학 용어이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돈을 지불하고 이런 수레바퀴 컨설팅회사의 서비스를 받아서 청색 영역의 가점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수레바퀴를 부정하는, 안티휠이 된다.

르포 작가 ‘나’는 수레바퀴가 출현한 지 1년이 되는 시점에 다양한 사람들을 취재하면서 바뀐 세상에 대해 기록한다. 그들과의 인터뷰를 책으로 정리한 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이 작품은 초월적인 존재인 수레바퀴가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정의를 사람들에게 강요할 때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검증하는 일종의 사고실험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라는 거대한 장치 안에 도덕성과 합리성의 관계를 놓고 독자들을 초대해 완성한 단요 유니버스는 페이크 르포임에도 섬뜩할 정도로 현실성을 갖는다.

이제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가 중요해지면서 모든 것이 재편된다. 철학과 윤리학의 위상이 높아지고, SNS엔 자극적인 소식 대신 미담이 넘쳐흐르고, 악플과 별점 테러가 사라졌다. 누군가는 세계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원판의 규칙과 보정치를 역산해 수레바퀴 관련 콘텐츠를 출시하기도 한다.

수레바퀴는 가치관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열서너 살 즈음에 서서히 형체를 갖추기 시작해 20대 초반에야 겨우 완성된다. 수레바퀴가 출생과 양육에 가점을 주지 않다 보니 인구 감소는 더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기후와 환경과 생태와 자본주의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 세계에서의 수레바퀴

전 지구적 불평등과 기후위기의 난제 앞에서 인류는 지금 저물어가는 지구의 시간에 직면해 있다. 서로 난민을 떠넘기던 국가들은 이제 기후난민 쿼터를 독점하려 하고, 급격한 소멸위기에 처한 선진국이 제3세계 사람들의 단체 이주 및 정착지가 되는 것이 환경이나 효율성 면에서 큰 지지를 받기도 한다.

기후와 환경과 생태와 자본주의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 세계에서는 지금 당장 덜 만들고 덜 쓰고 많이 나누는 것이 최선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수레바퀴는 우리가 직면한 “기후위기 대책과 전 지구적 재분배를 위한 도구”(165쪽)로 기능한다.

수레바퀴가 출현한 지 1년이 지난 시점, 이제 수레바퀴의 작동 방식을 어느 정도 파악한 사람들은 자신의 원판을 가꾸기 위해 노력한다. 르포 작가 ‘나’가 수레바퀴 이후 바뀐 세상을 취재하고 쓴 르포가 바로 이 소설인데, 끝으로 취재한 이들은 청소년들이다. 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 작품 속의 아이들은 수레바퀴 때문에 해외여행이나 비싼 전자기기도 가질 수 없다. 처음부터 잘했더라면 수레바퀴가 나타날 일도 없었을 거라며 세계를 이렇게 만든 어른들에게 분노해봐야 결과적으로 나아질 것은 없다. 그저 시대의 죽음을 바라봐야 할 뿐. 그래서 “최대한 무능하게 자라는 것, 소소한 실천만으로도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자신을 연마하는 것”(175쪽)이 청소년들 사이에 새로운 유행으로 자리 잡았다.

완벽한 논픽션, 겹쳐져 보이는 우리의 현실

르포 작가 ‘나’ 덕분에 우리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지금 우리의 세계를 조망하게 된다. 나의 관점이 아니라 '영원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지금-여기의 세상이 얼마나 망가져 있고, 망해가는지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 세계가 마주한 공통 난제인 기후 위기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철저히 망해가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데도, 이 정도로까지 바싹 코앞에 다가가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도무지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않으려 들고 최소한의 의사소통 시도조차 거부하는 시대에 필요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_구병모(소설가)

다양한 학문들과 연결해 세상을 재해석하면서 사실과 허구를 잘 버무려 만든 단요 작가의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는 SF이자 판타지이면서 우리가 처한 현실을 단호하게 경고하는 일종의 묵시록이다. 금정연 서평가의 말대로 '좋은 소식은 이것이 소설이라는 것'인데 수레바퀴 같은 강력한 제어장치가 없다는 것이 ‘좋은 소식인지 나쁜 소식인지’는 우리의 결단에 달려 있다.

우리는 수레바퀴가 없어도 끊임없이 평가받고 평가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독자는 다양한 인터뷰이들이 자신의 처지와 능력에 따라 취하는 입장을 살펴보면서 수레바퀴를 자신의 문제로 가져오게 될 것이다.

단요 작가의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는 지난 9월 출간되었다.

작가의 말

수레바퀴의 태도든 화자의 서술 태도든 제3자의 반론이든 간에, 작중의 요소 모두가 현실의 제 지향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만을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무엇이 합당하거나 타당하다는 판단을 내리는 것도 읽으신 분들의 몫입니다. (…) 이 모두가 사상적 지향을 떠나 독자 여러분께 충분히 재미있고 흥미로운 게임으로 받아들여졌기를 조심스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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