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타의책장] 벌레가 지키는 세계, 리버깅으로 우리가 벌레를 지킬 차례

김승요 승인 2023.08.05 22:05 의견 0


벌레가 지키는 세계 : 땅을 청소하고, 꽃을 피우며, 생태계를 책임지는 경이로운 곤충 이야기

비키 허드 저/신유희 역 | 미래의창


이 책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중요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 바로 행동하고 움직여야 한다고, 그리고 우리가 무척추동물 또는 벌레라고 부르는, 놀랍도록 작은 동물들을 끔찍하게 말살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자, 이제 다시 벌레들을 원래대로 돌려놓을 때다!
- 매트 샤트로우 (작가이자 무척추동물 보호 단체 ‘버그라이프(Buglife)’ CEO)

'벌레가 지키는 세계'의 저자 비키 허드 (Vicki Hird)는 30년차 환경운동가이자 곤충학자다. 주로 식품, 농업, 환경 정책 분야에서 활동해 왔으며 그린피스를 비롯한 다양한 환경 단체와 NGO의 자문위원을 맡은 바 있다. 현재는 독립해 자문 회사를 운영하면서 영국과 유럽연합 등에서 식품 및 환경과 관련된 국제적인 캠페인 진행을 수년간 맡았으며 정부 자문 그룹에 참여했다. 식품 관련 환경문제를 다룬 '먹어도 안전한가(Perfectly Safe to Eat?)'를 출간한 바 있다. 또한 비키 허드는 평생을 곤충 연구에 열정을 쏟아온 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생물학과 해충 관리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를 이어왔고 왕립곤충학회의 펠로우(FRES)로 활동하고 있다.


벌레가 지켜낸 경이롭고 아름다운 세계

벌레의 능력은 인간의 상상 그 이상이다. 몸길이가 5mm도 안 되는 돈거미는 정전기를 일으켜 엄청난 높이까지 뛰어오를 수 있으며, 아프리카 쇠똥구리는 하늘의 은하수를 보고 길을 찾는다. 건조한 사막에 사는 나미브사막거저리는 수분 섭취를 위해 물구나무를 서서 몸 표면에 맺힌 이슬이 입으로 떨어지게 한다. 흰개미는 자기 몸보다 2,000배나 큰 크기의 집을 짓는데 그 집의 구조를 보면, 열교환이 정밀하게 이루어지도록 설계되어 있어 건축가들도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다.

그뿐만 아니라 벌레는 지구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하고, 오물과 사체를 먹어 치우고 땅에 영양분을 공급하며 수질을 정화하기도 한다. 이처럼 식물부터 동물까지 수많은 생명체의 생존을 책임지는 것이 벌레다.

Unsplash / Jonathan Kemper


멸종위기의 벌레들

그런데 이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이토록 중요한 존재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때문에 지난 수십 년간 거의 40%에 달하는 곤충 종이 사라졌다. 인간이 소비하는 모든 것이 벌레에게 영향을 끼친다. 우리는 그들의 터전을 모조리 밀어버리고 건물을 짓고 살면서, 예쁘고 균일한 모양의 과일과 채소를 먹고, 값싼 육류를 마구 섭취하며, 남은 것은 무심하게 버린다.

균일한 과일과 채소, 값싼 육류는 농약과 살충제를 잔뜩 뿌려 만든다. 단일 작물을 빨리 재배하게 되면 당연히 해충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고, 이런 이유로 더 많은 양의 농약을 사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땅을 비옥하게 해주는 벌레가 사라지므로, 해가 갈수록 땅은 황폐해진다. 농약에 내성이 생기니 더욱 강한 유전자 변형 작물을 개발한다.

패스트 패션 산업도 마찬가지다. 세계 곳곳에서 면 티셔츠를 만들기 위해 무척추동물의 서식지를 밀어버리고 목화를 대량 재배하고 있다. 그 외에도 벌레들은 몸집이 작아 기온과 기상 변화에 매우 취약해 갈수록 심해지는 기후변화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인간이 밤낮 쉬지 않고 만드는 소음과 빛, 심지어 매일 사용하는 와이파이와 빠른 인터넷도 벌레의 생존과 번식에 영향을 끼친다. 30년 차 환경운동가이자 곤충학자인 저자는 무척추동물의 멸종에 영향을 끼친 요인을 이토록 정확히 짚어준다.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이 불러온 재앙은 물론, 농업과 식품산업 등에 얽힌 정치·경제적 원인과 우리의 생활 속 이야기까지, 서로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복잡한 요인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풍부한 사례와 탄탄한 근거로 풀어내고 있다.

리버깅으로 우리가 벌레를 지킬 차례

비키 허드가 쓴 '벌레가 지키는 세계'는 우리가 여태껏 등한시하고 혐오하기도 했던 곤충을 어떻게, 왜 소중하게 대해야 하는지, 그리고 근처 공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는지 쉽게 풀어 설명한 책이기 때문에 그동안 곤충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곤충은 먹이 사슬 가장 아래에서 다른 동물들의 식량 체계와 인류의 경제, 문명의 기초를 담당해 왔다. 벌레가 사라지면 우리 주변 풍경도 달라질 것이다. 적은 수나 작은 비율의 벌레만 사라져도 지역이 초토화될 수 있다. 벌레가 사라지면 벌레를 먹는 종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생태계를 지탱하는 벌레를 지키는 일의 핵심은 벌레에게 우리의 곁을 내어주는 것이다. 자연의 회복력을 믿고 야생 상태 그대로 내버려 두는 ‘리와일딩(Rewilding)’을 통해서 벌레의 개체 수와 생물 다양성을 회복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리와일딩을 한 장소에 멸종 위기에 처한 벌레들이 돌아온 사례가 많다. 다양한 방법을 통해 벌레가 다시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비키 허드가 말하는 ‘리버깅(Rebugging)’이다. 길가의 잡초와 야생화를 그대로 놔두는 것이나 베란다에서 식물을 키우는 것 등 작은 실천으로도 벌레에게 쉼터와 먹이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생태계와 풍경 전체를 변화시킬 수도 있는 벌레를 지키기 위해 농업이나 정치, 문화 전반 시스템의 변화도 함께 이뤄져야 할 때다.

환경 도서 '벌레가 지키는 세계'는 지난 6월 21일 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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